칼럼-무명베 짜기 전통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패션저널:김중희 섬유칼럼니스트/한국섬유개발연구원 기술위원]지난주 경북 성주군 성주대교 입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무명 짜기”란 입간판을 보고, 아! 여기에 무명베 짜는 곳이 있구나, 하면서 입간판 안내를 따라 가보았다.


67번 국도를 따라 가던 도중, 용암면 면사무소 앞을 지날 때 보니 면사무소 앞길 언덕받이에도 온통 목화 꽃나무로 가득 차 있었고, 길옆 대형 화분에도 목화 꽃나무로 가득 채워져 있어, 이곳이 마치 목화 재배 원산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면사무소에서 약 8km 서쪽으로 더 가서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우선 길옆에 약 200평 정도의 큰 목화밭이 의연히 자리 잡고 있었고, 1m 정도로 큰 키의 목화나무에는 금방이라도 목화가 필 듯한 굵직굵직한 다래 송이와 드문드문 하얀 목화솜 송이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처음에는 무명베 짜는 집을 찾을 수 가 없었고, 동리골목길을 해매며 동리 아낙네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무명베 짜는 집을 찾아 들어갔다.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로 경북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749-1번지이며, 옛 지명은 두리실 마을이다.

이집도 평범한 일반농가였고, 녹슬고 퇴색된 파란색 철 대문을 열고 겨우 들어서 보니, 집안 텃밭에서 서성이고 있던, 기능보유자인 백문기(83세)할머니가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이집 사랑채의 3~4평 남짓한 방안을 들여다보니, 필자가 어린시절 1950년도 후반, 어머니가 매일같이 무명베를 짜시며 길쌈에 골몰하시던 바로 그 베틀이 필자의 시선에 선명히 들어왔다. 

필자는 이 베틀과 물레를 보는 순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실로 약 50여년만의 기억을 더듬는 순간이었다.  곧이어 베틀이 있는 방으로 들어서신 백문기 할머니는 씨앗 틀을 돌려 목화씨 빼기를 보여주셨다. 이 작업은 필자가 어린시절 시골에서 주로 많이 하던 일이라, 필자가 직접 목화송이를 약간 옆으로 펴면서 씨앗 틀을 돌려 씨앗을 빼내니, “아이구! 참 잘 하내요” 하면서 칭찬이 늘어지셨다.

그리고 솜 타기, 고치 말기, 물레를 돌려 실잣기(Spinning), 베 짜기도 보여 주셨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됐다. 지금은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해 광폭직기들이 보통 800 RPM 이상의 빠른 속도로 밤낮으로 계속 가동 되면서 각종 화섬직물들을 대량으로 짜내고 있으니 전통 무명 짜기는 잊혀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틀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낸  필자가 이제 화섬 직물의 생산기술 향상을 위한 기술지원 사업을 하고 있으니 빠르게 흘러간 세월과 함께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69년 7월경 “이조말기의 농촌직물수공업 연구”논문을 발표했던 영남대학교 권병탁 교수가 백문기 할머니의 종시동생이라고 해서 더욱 반가웠다.  필자는 이 논문의 사본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 교수는 1984년 12월호 “전통문화” 에서도 특별기획/한국의 공방, 란에 “나주의 샛골나이” 제하의 기고를 한바 있는데 이 책도 필자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무명베 짜기는 광복 후 기계화와 함께 1960년대 이후 차츰 자취를 감추기 시작 하였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백문기 할머니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87호로 지정돼 있던 동서지간인 구연당 조옥이 할머니로부터  전통 길쌈기법을 전수 받았으며, 실제로 손수 목화재배와 무명 짜기를 올해로 59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16호로 지정받았고, 이 마을의 풍부한 물과 자연적인 기후조건 등으로 인해 지금도 실질적으로 양질의 목화를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년 간 약 5필 이상의 무명베(1필=20m, 7새~12새) 8새 정도의 품질을 실질적으로 짜서 판매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백문기 할머니도 고령으로 더 이상 일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전수자 1명이 있다고는 하나 이 오랜 전통이 이어질 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무명 짜기 전통을 확실히 이어지도록 하고, 또 소득도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전수자가 나오도록 행정당국에서 배려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소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목화 재배지인 “삼우당 문익점 선생 면화시배지”도 사적 제 108호로 지정돼, 목화재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조 태종 때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현감으로 있을 때 지금의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에서 목화를 본격 재배하기 시작 하였고, 이곳에 “문익점 면작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오늘날까지 목화재배가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서도 서말용 박사가 특별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매년 묘목을 받아와서 몇몇 업체에 나누어 주고 있다. 

우리 지역의 역사 깊은 이 전통산업이 재래식 수공업으로서 사실상 너무나 힘들고, 또 애쓰고 노력해도 수익성이 너무 적어,  누구도 이 전통을 이어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무명베 짜기 전통을 이어가도록  적극적인 지원 대책을 촉구해 본다. 우리나라도 초창기 섬유산업을 기반으로 이제 이만큼 성장 발전했으니, 이제는 자칫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 듯한 옛 전통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우리 대구경북은 오랫동안 섬유산업이 주종산업 이였고, 지역 전통산업으로서 우리나라의 국가 주요 기간산업이었던 만큼  우리 지역의 전통산업을 잊지 않고, 또한 우리 선조들의 지극한 정성과 혼을 계승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도 이런 전통 보존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지역 전통산업의 옛 모습과, 꾸준히 발전되어온 변천사를 보여 줄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라도, 우리 섬유산업의 변천사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전시관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뿌리를 더욱 정확히 보고, 느끼며 생각하면서 새로운 창의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섬유산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정신교육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 세계섬유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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